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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쌍고동 우는 항구 (1963) 2 месяц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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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쌍고동 우는 항구 (1963)

노래 이야기 우리 가요에는 한때 ’항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래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은 외국으로 갈 때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전만 해도 항구를 통해서 먼 길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외국에 항구를 개방한 시기는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1876년으로, 처음 개방된 것이 ’부산항‘이었고요. 이후, 1880년에는 원산항, 1883년에는 인천항이 차례대로 개항되면서 우리의 파란만장한 근대사가 항구마다 펼쳐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땐 징병을 떠나고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민초들이 항구에서 서글픈 이별을 해야 했고요. 1945년 광복을 맞았을 때엔 타국을 헤매다 그리운 고국땅을 밟는 이들의 감격적인 상봉이 항구에서 펼쳐졌고, 전쟁이 발발하자 항구를 통해 외국의 군인들이 들어오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외항선을 타고 멀리 떠나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항구를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항구는 우리 근대사의 산 증인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우리 가요에도 ’항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속속 등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 가요였기에 1930년대 박향림 선배님의 ’항구에서 항구로‘를 시작으로 이난영 선배님의 ’목포는 항구다‘, 김영춘 선배님의 ‘항구야 잘있거라’, 남인수 선배님의 ‘울며 헤진 부산항’, 박경원 선배님의 ‘이별의 인천항’, 장세정 선배님의 ‘연락선은 떠난다’, 윤일로 선배님의 ‘항구의 사랑’, 백야성 선배님의 ‘항구의 영번지’, 이미자 선배님의 ‘동백꽃 피는 항구’ 등등 수많은 곡들이 발표되었구요. 이런 흐름 속에 1963년에 발표돼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가 바로 ‘은방울 자매’ 선배님들의 ‘쌍고동 우는 항구’입니다. ‘쌍고동 우는 항구’는 은방울 자매의 ‘데뷔곡’이자 첫 번째 히트곡입니다. 김영일 선생님이 작사하고 송운선 선생님이 작곡한 ‘쌍고동 우는 항구’는 항구에서 펼쳐지는 애틋한 이별을 ‘은방울 자매’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전국적으로 사랑받았고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송운선 선생님은 이 노래를 계기로 은방울 자매와 계속 작업하면서 ‘삼천포 아가씨’와 ‘무정한 그 사람’을 역시 최고의 히트곡으로 탄생시켰습니다. ‘ 쌍고동이 울어대면 갈매기도 울었다네 마도로스 사랑이란 이별도 많드란다 파이프 입에 물고 잘있거라 손짓하던 정든님도 울었다네 갈매기도 울었다네 ​ 뱃머리에 뿌려놓은 눈물자국 얼룩졌네 마도로스 뜬사랑에 눈물도 많드란다 찾아올 그날까지 잘있거라 인사하던 정든님도 울었다네 쌍고동도 울었다네 “ 1960년대는 그야말로 우리 가요사에서 걸그룹의 전성시대였습니다. 한해에도 수많은 여성그룹이 데뷔하던 시절, ’은방울 자매‘는 이름처럼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다른 그룹과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각광받았는데요. ’큰 방울‘로 불렸던 ’박애경‘ 선배님과 ’작은 방울‘로 불렸던 ’김향미‘ 선배님은 처음엔 솔로가수로 시작했습니다. 박애경 선배님은 콩쿨에 참가했다가 심사위원이었던 이재호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데뷔했고, 김향미 선배님은 백영호 선생님에게 오디션을 받고 재능을 인정받아서 빅토리 레코드의 전속가수가 되었는데요. 같은 ‘빅토리 레코드’의 전속가수로 각각 솔로활동을 하던 동갑내기 두 사람은 여성그룹을 결성해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구요. 1962년 드디어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프린스 쇼’에 ‘은방울 자매’란 이름으로 첫 무대에 올라서 특유의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를 선보이는 데 성공합니다. 당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고, 무대감독이 두 사람을 작곡가 송운선 선생님에게 소개하면서 탄생한 노래가 바로 ‘쌍고동 우는 항구’였죠. 하지만, 1965년에 방송사는 가사, 선율, 리듬, 창법, 품위 등을 검토해서 대중 정서에 퇴폐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래에 대해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는데요. 이때, 이미자 선배님의 ‘동백 아가씨’와 함께 은방울 자매의 ‘쌍고동 우는 항구’도 방송 금지되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왜색풍에 저속하다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지만, 그래도 좋은 노래는 대중들이 먼저 알아주는 법이죠. 비록 방송은 금지되었어도 사람들은 ‘쌍고동 우는 항구’를 여전히 애창했고요. 그렇게 이 노래는 대중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저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걸그룹이 등장했던 1960년대. 댄스와 화음이 동반되지 않은 ‘유니즌’창법으로 담백하게 트로트 노래만 불러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한 ‘은방울 자매’인데요. 그 전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쌍고동 우는 항구’와 함께 우리의 인생사가 담긴 트로트의 진수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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