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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조선 시네마] "정주성", 1811년 홍경래의 난 최후의 전투 - 제1부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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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조선 시네마] "정주성", 1811년 홍경래의 난 최후의 전투 - 제1부

1811년 평안도의 홍경래가 봉기했습니다. 서북 지방에 대한 차별과 조선 후기의 사회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홍경래는 10년의 기간 동안 준비합니다. 홍경래는 군량미를 모으고 무기와 사람을 모았습니다 거병 초기의 홍경래 봉기군은 불과 열흘 만에 청천강 이북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이 여세를 몰아 평안도의 주요 고을 중 하나인 안주를 위협할 정도가 됩니다. 이때 내부에 배신자가 홍경래를 암습하여 홍경래는 칼에 맞아 쓰러집니다. 봉기군의 진격은 여기서 멈춰 서게 됩니다. 겨우 태세를 정비한 봉기군은 12월 28일 송림에 진을 쳤고, 관군은 평안 감영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하게 됐고, 다음날 송림에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바로 송림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패한 봉기군은 정주성으로 후퇴하게 됐고, 뒤이어 이어지는 3개월이 넘는 농성이 시작됩니다. 100여 일이 넘는 공성전 기간 동안 관군과 봉기군은 저마다의 계책을 내놓고, 이 계책에 대응하며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습니다. 아울러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 그리고 분노를 성벽 담장 하나를 놓고 토해내야 했습니다. 홍경래 난의 마지막 결전지 정주성.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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