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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공주 공산성에서 발굴된 칠 갑옷. 천 편이 넘는 갑옷 조각들의 표면엔 0.4밀리미터가 넘는 유래없이 두꺼운 칠이 덮여 있다. 갑옷에 쓴 글씨 중 정관 19년은 당 태종의 연호로 서기 645년, 의자왕 재위 5년을 의미한다. 백제 멸망의 날을 맞았던 공주 공산성에서 발견된 최고급 칠 갑옷. 과연 누구의 것이며 왜 이곳에 묻혔을까? 공주 공산성에서 1,400년 전 가죽 칠(漆)갑옷 출토되다 공주 공산성 성안마을 저수지 터에서 무려 천 편이 넘는 칠 갑옷 조각들이 발견됐다. 이는 갑옷 한 벌을 복원할 수 있는 양으로 칠 갑옷이 이토록 다량으로 발견된 것은 동아시아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이다. 갑옷에 쓰인 20여 자의 명문 중에는 정관 19년이라는 당의 연호가 있어 갑옷이 만들어진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전설의 백제 황칠 가능성 확인되다 학계에선 정관 19년을 둘러싸고 이 갑옷이 어느 나라의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당시 백제는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았으므로 당의 갑옷이라는 주장과 칠지도, 남제서 등에서 중국의 연호를 쓴 것을 근거로 외교적 상황에서는 사용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북송시대 책 ‘책부원귀’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록이 등장한다. "당 태종이 정관 19년에 백제국에 사신을 보내 금칠(황칠)을 채취해 산문갑에 바르게 하니 황금빛 이상으로 빛났다." 이 문헌에 드러난 정관 19년(서기 645년)은 공산성 갑옷의 명문과 정확히 일치한다. 오직 한반도 남부 해안지대에서만 생산되던 신비의 도료, 황칠! 공산성 발굴 갑옷은 전설의 황칠 갑옷이었을까? 제작진은 KIST에 갑옷의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GC-MS분석과 적외선 분광 분석을 실시한 결과 갑옷에선 다수의 옻칠 성분과 함께 일부 황칠 성분이 확인됐다.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공산성 칠(漆)갑옷 갑옷을 현미경으로 200배 확대하여 관찰한 결과 열 번 이상 공을 들여 칠한 것으로 판명됐다. 갑옷 조각의 형태 또한 20여 종에 이르렀다. 옻칠을 주로 하고 일부 황칠을 더한 것으로 보이는 이 갑옷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7세기 동아시아 각국의 갑옷 형태를 참고해 공산성에서 발굴된 칠 갑옷을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다. 의도적으로 갑옷을 묻었나?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갑옷이 발견된 층 아래에선 마갑과 철 찰갑이 차례로 추가 발굴됐다. 철 찰갑이 발견된 층위에선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칼과 유사한 장식도와 대도가 발견됐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매장했음을 추론하게 할 만큼 정연한 형태였다. 또한 유적에선 불에 탄 기와조각과 100여 개의 화살촉도 추가로 발견됐다. 공산성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이번에 발굴된 유물이 베일에 싸인 백제 멸망기 정황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400년 전 백제 칠(漆)갑옷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쳐 본다. 신역사스페셜 95회 – 백제 공산성 1,400년 전, 칠(漆)갑옷의 비밀 (2012.2.9.방송) http://histor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