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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를 넘어서면 42회 미친놈들 전쟁에 3 недели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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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를 넘어서면 42회 미친놈들 전쟁에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 3 사단 26연대가 강원도 양양군서 한국전쟁 발발 후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했고, 이틀 후인 10월 3일 저우언라이는 "현재 조선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조선인들 간의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무방하나, 유엔군이 38선을 넘을 경우 이는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는 최후통첩 성명을 내었다. 하지만 미국은 여세를 몰아 한반도의 통일을 시도하기로 결정하였고 10월 7일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주도 아래 유엔군의 한국통일 결의안과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의 설치를 결의했다. 10월8일 중공지도부의 출병에 관한 최종회의에선 마오쩌둥은 순망치한이라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본토에서 싸우느니 조선에서 싸우는 게 낫다"며 주전론을 내세웠고, 저우언라이는 "유엔군이 북 중 국경에서 멈출 수 있으니 일단 개입을 자제하고 지켜보자"는 신중론을, 린뱌오는 "우리가 미국을 이기기는 힘들다."는 비관론을 각각 제시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펑더화이는 "조선의 지형을 고려해서 신중히 작전을 세운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마오쩌둥을 지지했고, 주더가 여기 찬성함으로서 출병이 결정되었다. 서부전선의 유엔군도 10월 9일 본격적인 북진을 시작하자 북한의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기관과 단체 등의 임시 수도를 강계로 정하고, 사흘 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평양을 버리고 철수를 했다. 미국은 북한이 평양을 잃고 피신해 임시수도로 정한 강계시를 공격하기 위해 장진호 방면으로 미 해병대 1만 2천여 명을 전진 시켜 주둔시켰고, 미 육군이 그들을 지원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공군은 계속해서 미군에게 "참전하겠다."고 경고를 날리고 있었으나, 미군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미군은 중공군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었다. 10월 16일에 중공군의 선발부대가 압록강을 넘은 이후 10월 18일부터 본격적으로 본대가 신의주, 청수, 만포 세 방면에서 압록강을 도하했다. 이 당시 군 사령관들이 추측했던 중공군의 규모는 약 3만 5천 명 정도였지만, 실제 들어와 있던 중공군은 서부전선에서 미8군과 대치한 제13병단 18만과 동부전선에서 미10군단과 대치한 제9병단 12만으로 총 30만 명 내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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