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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본기(2) / 은나라를 창업한 탕임금과 이윤 / 사마천 사기 / 은나라 왕조계보 4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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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본기(2) / 은나라를 창업한 탕임금과 이윤 / 사마천 사기 / 은나라 왕조계보

인문학 고전 사마천 사기 은본기(殷本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은본기(殷本紀)에 들어가기에 앞서 은나라의 유물 갑골문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은본기 내용으로 들어가서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과 그의 조력자 이윤에 대한 이야기와 은나라 왕조의 계보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나라 창업을 이룬 탕왕 이야기 은(상나라) 나라는 BC1600년~BC1046년 약 600년을 이어온 왕국입니다. 은나라는 사마천 사기 역사책에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역사에서 지난번 영상에서 말씀 드리 바와 같이 갑골문자가 새겨진 유물이 발굴되면서 전설이 아닌 실존했던 왕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은나라는 중국 최초로 역사적 근거를 갖게 되는 실체가 확인된 나라가 되겠습니다. 원래 은나라는 ‘상나라’라고 불려져야 타당합니다만 상나라가 은허라는 지역을 상나라의 도읍으로 삼은 기원전 1300년 이후 은나라라고도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상나라, 은나라는 같은 왕조를 의미하게 되는 거죠. 오늘 이 시간에는 은 왕조인 탕 임금부터 은을 멸망에 이르게 한 주왕까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는데요 먼저 창업을 이룬 탕 임금의 조상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2) 상(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의 조상 설(契) 탕 임금의 13대 조상은 순임금, 우임금 때 활동했던 설이라는 사람입니다. 설(契)은 오제 본기에서 나왔던 제곡의 둘째 부인인 간적(簡狄)이라는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하루는 어머니 간적이 목욕을 하러 갔다가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받아 삼켜 잉태하여 설을 낳았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설(契)은 장성하여 하나라 우(禹) 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와서 공을 세웠고, 그 이전 순(舜) 임금 때에는 순임금이 설에게 사도(司徒: 교육부 장관)를 맡겨 백성들을 가르치고 교화하게 했습니다. 순임금 때 설이 공을 쌓자 순임금이 설에게 상(商) 땅을 봉하고 자씨(子氏)라는 성을 내려줍니다. 그래서 상나라가 유래되었고 설은 은(殷) 나라를 세운 탕 임금의 시조가 되는 겁니다. 그 뒤로 13대 설의 후손으로 천을(天乙)이 후대를 이었는데, 이가 바로 성탕(成湯)입니다. 탕은 선왕(先王)이었던 제곡을 추종하여 옛 박(亳) (현 산동성 조현(曹縣) 남쪽 20km 지점. 옛날 하왕조의 도읍지) 땅을 도읍으로 정합니다. 3) 탕이 하나라를 정벌하고 상나라를 건국하는 이야기 탕은 하왕조의 제후 중 하나인 갈백(葛伯)이 제사를 올리지 않자 ‘맑은 물에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백성을 보면 그 나라의 맑은지 어둔지를 알아볼 수 있다며 이웃 제후국인 갈백의 지역을 가장 먼저 정벌합니다. 이때 탕을 따르던 이윤이 나서며 탕의 행동과 언행을 두둔하며 응원합니다. -. 훌륭한 창업자에게는 걸출한 조력자가 있는 법 (이윤) 이윤(伊尹)은 탕(湯) 임금을 도와 하(夏) 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을 토벌한 상(商) 나라의 창업공신입니다. 원래는 탕 임금의 부인 유신씨(有辛氏)의 잉신(媵臣 : 제후들의 딸이 시집갈 때 데리고 가는 남자 몸종)이 되어 정(鼎:원형 솥)과 조(俎:음식을 닮는 그릇))를 메고 탕에게 갔다가 탕 임금에 의해 발탁되어 상나라의 국정을 맡게 된 인물입니다. 이윤은 이후 탕 임금이 하나라를 멸하고 상왕조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고, 후에 탕 임금의 뒤를 이은 임금도 보좌했고 계속해서 탕 임금의 직계 손자인 태갑(太甲)을 왕으로 옹립하여 올바른 정치와 법도에 대해 가르쳤지만 태갑이 정치를 포학하게 하고 탕왕이 세운 법도를 어지럽히자 이윤은 태갑을 쫓아내고 스스로 섭정의 자리에 올라 상나라를 다스리다가 3년 후에 태갑이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자 그때서 이윤이 다시 태갑을 맞아들여 왕위에 복위시켰던 그러한 인물입니다. 이윤은 태갑의 뒤를 이은 옥정(沃丁) 임금 때 죽습니다. 이윤은 음식의 맛을 예로 들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여 탕이 왕도(王道)를 실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혹은 이윤이 처사였는데, 탕이 이윤을 맞아들이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다섯 번이나 거절한 뒤에야 비로소 탕의 초빙을 맞아들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때 이윤은 탕의 신하가 되어 탕에게 군주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소왕(素王) 스타일 (높은 덕으로 존경을 받아 추대되었음에도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성인)과 구주(九主)(아홉 가지 군주 스타일) 1.법군(法君) :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군주 2. 전군(專君) : 독단적인 군주 3. 수군(授君) : 다른 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군주 4. 노군(勞君) : 스스로 힘써 천하를 위해 노력하는 군주 5. 등군(等君) : 논공행상을 균등하게 잘하는 군주 6. 기군(寄君) : 백성들은 고행하는데 그 위에 교만하게 군림하여 패망을 자초하는 군주 7. 파군(破君) :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 8. 고군(固君) : 성지(城池)를 굳건하게 쌓을 뿐 덕을 베풀지 않은 군주 9. 삼세사군(三世社君) : 어린 나이에 군위에 오른 군주)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에 감동한 탕은 이윤을 등용하여 국정을 담당하게 합니다. 사실 이윤은 그전에 탕을 떠나서 하나라로 갔다가 하나라 걸왕이 이미 부패했음을 목격하고 다시 박(亳)으로 돌아왔습니다. -. 훌륭한 창업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탕 탕이 교외로 나갔는데 사방에 그물을 치고 하늘에 대고 「날아다니는 모든 새들을 전부 다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해 주소서! 」하며 기원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탕이 「어허! 이런. 한꺼번에 다 잡으려고 하다니!」하고는 탕이 그 사람에게 한 면만 남기고 세 면의 그물을 거두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축원하도록 시킵니다. 「왼쪽으로 가려고 하는 새는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새는 오른쪽으로 가게 하소서. 말 안 듣는 새만 내 그물에 걸리게 하소서.」…. 당시 하나라의 제후들은 탕의 이러한 소식을 듣고 「지극한 탕의 덕이 금수(禽獸)에까지 이르렀구나!」라고 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 탕이 하나라 걸왕을 몰아내기 위한 당위성 이야기 당시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주색에 빠져 포악한 정치를 행하자 제후국인 곤오씨(昆吾氏:지금의 허난 성 복양시(濮陽市) )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탕이 군사를 일으켜 제후들을 인솔하고 이윤과 함께 직접 도끼를 들고 곤오를 정벌한 후에 계속해서 걸왕까지 정벌하려고 하면서 군사들과 제후들을 향해 말했다. 「자, 여러분! 모두 이리 와서 내 말을 자세히 들으시오. 내가 감히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꾀하려고 함이 아니라, 하나라의 걸왕이 너무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오. 하걸을 정벌하려는 나에 대해 원망하지 마시오 나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여 하나라를 감히 정벌하지 않을 수 없소. 하늘은 나에게 죄를 너무 많이 저지른 하걸을 벌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오. 지금 여러분 가운데 농사짓기도 바쁜 이 시기에 무슨 전쟁이냐 또는 걸왕이 뭔 죄를 지었다느냐?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걸과 그 신하들은 큰 공사들을 일으켜 징발된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가혹하게 착취했소. 그 결과 하나라 백성들은 나태해지고 서로 불복하게 되었소. 마침내 백성들은 『저 태양은 언제나 지려는고? 나는 차라리 저 태왕과 함께 사라지리라!』라고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소. 하나라의 덕이 이와 같이 무너졌으므로 지금 내가 정벌하고자 함이오. 그대들이 하늘의 징벌을 대신하도록 나를 도와준다면, 그대들에게 큰 상이 돌아가게 하겠소. 내 말을 믿어 주시오. 나는 결코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오. 만일 그대들이 나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징벌을 내리고, 결코 너그럽게 대하지 않겠소.」 결국 하나라 걸왕은 상의 탕과 싸워 패하고 명조(鳴條)로 달아나자 하나라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무너졌다. 이윤이 제후들을 향해 하나라를 정벌한 탕의 공적을 제후들에게 공포했다. 이로써 제후들은 모두 탕의 명을 받들어 귀의했다. 상탕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안정시켰다. -. 승리한 상나라 탕왕의 왕권 굳히기 작업 탕왕이 본국인 박(亳)으로 돌아와 3월에 동쪽 교외에 나가서 여러 제후국의 군주들에게 선포했다. 「백성들을 위하여 노력하지 않거나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내 그대들을 징벌할 것이니 원망하지 말라!」 왕이 또 일렀다. 「옛날 하우(夏禹)와 고요(皐陶:법무장관)는 오랫동안 밖에서 일하며 백성에게 많은 공을 세워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소. 이들은 동쪽의 장강(長江), 북쪽의 제수(濟水), 서쪽의 황하, 남쪽의 회수(淮水) 등 사독(四瀆)을 잘 흐르도록 다스려 만민이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소. 또한 후직(后稷)이 파종하는 방법을 전해주어 농민들이 백곡을 경작하게 되었소. 이들 삼공(三公)은 모두 백성을 위한 일에 공로를 세웠기에 그들의 후대가 모두 나라를 얻을 수 있었소. 옛날 치우(蚩尤)와 그의 대부가 난을 일으켰으나 하늘이 그들을 돕지 않았던 선례가 있소. 선왕들의 말씀을 따르는 데 힘써야만 하오」 왕이 또한 일렀다. 「정도(正道)를 행하지 않으면 그대들의 나라가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겠으니, 그때 가서 나를 원망하지 말라!」 탕이 역법(曆法)을 개정하고, 복색(服色)을 바꾸어 백색을 숭상하였으며 조회를 낮에 하기로 결정했다. 4) 탕 이후의 은나라 왕위 계승과 은 왕조의 성쇠이야기 #은나라_탕임금 #은나라왕조_계보 #탕임금과_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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