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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분립이란 나라를 한 명의 왕이 아닌, 국회-정부-법원이 나누어 맡는 것이지요? 왜 현대 사회에선 권력을 한 사람이 아닌 세 기관이 나눠 가지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첫 번째로 루이 14세 이야기입니다. 17~18세기 유럽은 절대왕정기였습니다. 유럽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은 후, 전 세계를 배를 타고 누비며 총과 대포로 수많은 보물과 자원들을 차지했어요. 이 막강한 힘은 강력한 왕권을 탄생시키는데 이를 절대왕정이라 부릅니다. 전 세계를 호령하던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왕은 누구였을까요? 그가 바로 태양왕으로 불린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입니다. 루이 14세는 다섯살에 왕위에 올라 왕이 되는 수업을 받은 뒤 22살의 나이에 유럽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 프랑스를 직접 다스리게 됩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당대 최강의 육군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침략합니다. 그러나 영국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 결과, 영토는 다시 줄어들었고 잦은 전쟁으로 빚만 산더미같이 쌓였어요. 당시 프랑스인의 평균 수명은 25살 이하였으며, 파리를 비롯한 모든 도시에 거지가 들끓고 굶어 죽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은 민중들의 시체가 즐비했답니다. 그런데도 루이 14세는 백성들을 동원해 베르사유 궁전을 짓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는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이 살게 되었고, 왕과 귀족들의 궁정 생활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네요. 백성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짓다가 사고로 죽으면 아무런 사과도 보상도 없이 시체를 몰래 묻어버렸답니다. 이 와중에 루이 14세는 사냥, 기마 경기, 춤, 당구 등 모든 놀이를 즐겼다 하니 가장 강한 왕 밑에 가장 불행한 백성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72년간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루이 14세는 77세에 죽습니다. 루이 14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랑스 국민들은 감사하며 크게 기뻐했다 하네요. 이때 프랑스 백성들이 가진 분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이야기, 이렇게 왕 한 사람이 나라를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구상한 사람들은 로크나 몽테스키외 같은 계몽주의자들이었지만, 이를 최초로 실현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왕정이 아닌 공화정으로,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투표로 선출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1787년 필라델피아 비밀헌법회의에서 세계최초의 삼권분립을 명시한 미국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입법부(국회)-행정부(대통령)-사법부(법원)은 서로를 견제할 수도, 협력할 수도 있습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이 법을 대통령은 시행합니다. 법을 어길 경우 법원은 처벌하지요. 반면 국회가 만든 법에 대해 대통령은 거부할 수도 있고, 법원은 헌법에 어긋나는지 확인합니다. 국회에서 돈-예산을 짜면 대통령은 그 돈을 사용합니다. 또 대통령은 법원의 재판관을 임명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마음대로 권력을 남용하면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2/3가 동의하면 법원은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는지 최종 판단을 하지요. 그래도 만약 하나의 세력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모두 가지면 소용이 없겠지요? 1792년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마스 제퍼슨 두 사람은 생각이 서로 달라 논쟁을 벌이다 두 개의 다른 정당을 만듭니다. 당시 미국은 13개의 주가 연합한 상태였는데 강력한 하나의 정부를 주장한 연방당, 그리고 각 주들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민주공화당이 있었어요. 워싱턴이 임기를 마친 후 미국은 2대 대통령 선거를 시행합니다. 1등이 대통령이 되고, 2등이 부통령이 되는 방식이었는데 1등은 연방당의 존 에덤스가, 2등은 민주공화당의 토마스 제퍼슨이 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사이가 좋았냐구요? 대통령 존 에덤스가 하는 모든 일에 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사사건건 반대만 했답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선 결국 토마스 제퍼슨이 존 에덤스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어요. 미국은 시작부터 권력을 나눌 줄 알았던 나라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둘은 1826년 같은 날에 죽었다 하네요. 그날은 바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