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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역사만이 희망이다, 단재 신채호 / KBS 2001.3.10 방송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1 대사건, 묘청의 난 1125년 주신관계를 원하는 금나라에 화친하려는 당시 고려 문벌귀족에 대해 승려 묘청은 서경에서 난을 일으킨다. 그것이 유명한 묘청의 난이다. 후에 금나라의 전쟁보다 화친을 주장했던 문벌귀족의 대표적 인물 김부식에 의해 진압되는데....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1의 대사건으로 보고 있다. 또한 사대와 보수를 전복시킨 독립적 진취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단재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압록강 이서에 위치한 발해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그 후 역사관을 제한 축소시켜 인식하게 했으며 사대주의에 젖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또한 진취적이며 개혁적이고 화랑의 전통을 이어받은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함으로써 천년을 이어오는 우리 역사는 진취성도 개혁성도 독립성도 모두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신채호는 행동하는 무장투쟁가였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의 생존을 빼앗는 우리의 적을 없애버리는 데서 찾을 것이다” 때로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려지던 의열단에게 단재는 1923년 의열단의 행동목적 및 지침서를 만들었다. 조선혁명선언은 독립투사들에게 투쟁의 교본이 됐다. 이후 단재는 독립운동을 홍보하고 폭탄공장을 만들기 위한 자금 마련에 직접 나서게 된다. 일본을 거쳐 대만에서 그 뜻을 이루려는 순간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옥고 중 살 수 있는 기회도 일제 앞잡이의 도움이라는 이유로 받기를 거절했다. 결국 단재는 1936년 2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신채호는 역사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기록이라며 역사를 투쟁으로 쟁취한 결과물로 보고 있다. 단재 신채호에게 있어 일제 식민지에서 나라를 되찾는 길은 타협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역사를 바로잡는 일 = 독립, 역사만이 희망이다 신채호는 한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애국심이며. 애국심의 원천은 역사라 했다. 당시 국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주의에 의해 왜곡돼 있었고 그런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채호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이고 강대했던 역사 찾기에 몰두한다. 우리 고대사의 체계는 단군으로부터 부여,고구려, 발해로 계승된다는 것이다. 부여와 고구려 중심의 역사인식! 신채호의 주장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다. 우리 고대사는 단군에서 기자, 위만으로 계승된다는 종래 사학자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만이 희망이라며 역사연구를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던 단재. 그는 애국심을 기르고 고취시키는 방편은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 여겼다. 그것을 곧 독립으로 가는 길이라 여겼으며 지금이 아니라 후대일지라도 제대로 된 역사를 통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열쇠가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역사스페셜 105회 – 역사만이 희망이다, 단재 신채호 (2001.3.10.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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