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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은 - The Internationale 인터내셔널가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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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은 - The Internationale 인터내셔널가

노래가 만들어진 1888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외치는 노래 '인터내셔널가'입니다. 20여 년 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노래를 공연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에 도움을 주시고 영상을 기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맘을 전합니다. 이 노래는 1871년 5월 파리꼬뮨 패배 후 베르사이유 정부에 의해 수배 중이던 꼬뮨의원 외젠느 포띠에가 남긴 글에 1888년 가구공 출신 삐에르 가이터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인터내셔널은 인류의 미래요. 사랑이다. 일어나 싸우자"라는 외젠느 포티에의 외침은 1864년 9월 28일 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노동자 정치 국제조직인 '인터내셔널'만이 우리들의 미래요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외젠느는 '인터내셔널'의 회원으로서 파리꼬뮨에 합류 합니다. 세계최초 노동자 민중의 정부 파리꼬뮨이 일어난 계기는 이렇습니다. 자본가와 농민의 지지로 1848년 프랑스의 지도자로 등장한 나폴레옹 3세(나폴레옹 1세의 조카)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금지하고 폭압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면서 20여 년간 독재를 합니다. 굶주림과 폭정에 억눌렸던 파리의 노동자들은 1869년 10월 8일 동맹 파업으로 일어섭니다. 나폴레옹 3세는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해 1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50명이 부상을 입습니다. 1870년 7월 19일 독재자 나폴레옹 3세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자국 노동자의 분노를 독일과의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공업화와 산업화를 이뤄낸 독일군에 참담히 패합니다. 전쟁 개시 한 달 열흘만인 9월 2일 나폴레옹 3세는 자국 땅인 프랑스 동부 스당에서 10만 군대와 함께 생포되는 치욕을 당합니다. 나폴레옹 3세의 패전을 바라본 파리시민들은 9월 4일 황제정을 폐위하고 루이 트로쉬 장군을 대통령으로 국민방위 공화정부를 세웁니다. 이때 약삭빠른 자본가들도 곧바로 국민방위정부에 합류합니다. 프로이센군이 파리를 포위한 상황에서도 노동자 민중은 공화국정부를 지키려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공화국의 주도권을 잡는 걸 두려워한 국민방위정부는 곧 혹독한 추위가 닥치는 상황인데 식량 확보에는 나서지 않고 기득권자들의 권익을 사수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굶주린 노동자 민중은 개와 고양이 쥐까지 잡아 먹으며 버텼습니다. 이제 파리시민들은 "무능한 정부는 인민에게 꼬뮨에게 자리를 물려주라" 술렁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방위정부는 그간 연기해 오던 모든 부채와 임대료를 당장 지불 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쟁으로 포위된 파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 민중들은 그 명령의 피해자였습니다. 먹고살 것도 없는데 집세를 어떻게 낸단 말인가! 식량은 마침내 떨어져 12월 30일에는 동물원의 코끼리 두 마리가 사살되어 코끼리 고기 1파운드가 40프랑에 팔려 나가는 처참한 상황에 부닥칩니다. 파리시민들의 봉기로 공화정을 세운 그 시각 프랑스의 자본가들은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보다는 프로이센군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민중의 봉기 덕으로 권력을 잡자 배신에 나선 것입니다. 1871년 1월 18일 프랑스 왕국의 상징이었던 베르사이유 궁에서 프로이센(독일)의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 선포식을 거행합니다. 국민방위 정부는 시민군의 힘으로는 독일군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론을 펴며 휴전을 제안합니다. 1월 28일 국민방위 정부는 휴전을 발표하며 노동자 민중의 뒤통수를 칩니다. 2월 8일 독일군의 통치 아래 국민의회 선거가 치러집니다.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에서 왕당파가 압승을 합니다. 변호사 출신 거물 정치가 티에르가 대통령에 앉게 됩니다. 휴전협정에 의해 프로이센은 철강이 풍부한 알사스 로렌지역을 챙겼고 엄청난 전쟁 배상금도 받아냈습니다. 3월 1일에는 독일군이 파리 시내를 행진하는 시가행진도 허용합니다. 이처럼 무책임한 공화정의 작태에 파리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더욱이 비스마르크의 요구에 쩔쩔맨 티에르가 민중의 혈세로 구매한 무기를 반납하라고 파리시민들을 압박합니다. 3월 8일과 18일 몽마르뜨 언덕에 설치한 탱크를 빼돌리려다 발각되자 분노한 파리시민들은 탱크를 빼돌리려한 장군을 처형하고 다시 봉기합니다. 3월 18일 파리시민들의 봉기 진압에 실패한 정부는 베르사이유로 도망쳤고 시민들은 티에르 정부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파리시민들은 3월 26일 정부가 빠져나간 그 자리에 새로운 선거를 통해 꼬뮨정부를 세웁니다. 파리꼬뮨은 1871년 3월 18일∼5월 28일까지 존재했던 세계 최초의 노동자 민중의 정부입니다.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직책을 노동자 민중이 직접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선출공직자의 월급은 노동자의 평균임금으로 했습니다. 징병제, 상비군, 경찰을 폐지하고 노동자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자본가가 떠난 공장은 노동자들이 공장경영계획과 협동조합을 세워 운영했습니다. 국가와 교회 분리, 제빵공의 야간노동 폐지, 집세 전액 면제와 전당포 저당품에 대한 매각 중지, 직업소개소 폐지, 책 지도 종이 등 모든 교육 교재 무상 지급, 창녀제 폐지 등 꼬뮨의 모든 결정은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였습니다. 파리는 살인, 절도, 폭력이 모두 사라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쫓겨나 베르사이유로 도망친 부끄러운 정부는 4월 8일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손잡고 반격을 준비합니다. 학살의 준비를 마친 베르사이유 정부군은 5월 21일 파리로 들이닥칩니다. '피의 일주일' 동안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집니다. 파리의 노동자 민중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싸웠습니다. 스당에서 포로 신세로 지냈던 나폴레옹 군대가 가장 잔인하게 꼬뮨 전사들을 진압해댔습니다. 5월 27일 페르라쉐즈 묘지에서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한 코뮨 전사들은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다음날인 5월 28일 오후2시 꼬뮨 전사들의 총성이 멎었습니다. 파리꼬뮨은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베르사이유 정부군과 충돌한  '피의 주간' 동안 3만 명이 살해되었고 3천 명이 감옥에서 살해되고 1만4천 명이 종신형을 선고받고. 8만의 아이가 거리에 버려졌습니다. 베르사이유로 피신한 정부가 다른 나라 군대의 힘을 빌려 꼬뮨정부를 공격해 옴으로써 물리력의 한계에 밀려 파리꼬뮨 전사들은 패배하였지만, 평등과 정의를 실천한 꼬뮨정부의 투쟁은 이후 노동자 민중이 처한 억압과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희망의 노둣돌로 자리했습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파리꼬뮨을 기념하며 '인터내셔널'을 조직하였고,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습니다. 전 세계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는 192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불렸습니다. 식민통치 아래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는 노동자 민중들의 입에 '인터내셔널가'는 희망가였습니다. 그러나 남북 전쟁과 군부독재 통치 아래 '인터내셔널가'는 이념의 잣대에 묻혀 오래도록 금지곡이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를 확장해 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합니다. 이후 전노협은 5월 1일 메이데이를 앞두고는 전국적으로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가' 배우기를 진행했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불온시 했던 이 노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 메이데이 정신으로, 파리꼬뮨의 투혼으로 부활하였습니다. 노동자 해방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 곳곳의 노동자 민중의 투쟁현장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노동자 해방의 내일을 꿈꾸며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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