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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이 대관령 산신이 된 까닭은? 충북 진천의 길상사, 김유신을 기리는 제사는 일반적으로 왕에게 행해지는 4배의 예로 모셔지고 있다. 또한 강릉 화부산사에 있는 김유신의 영정은 신라 금관을 쓰고 있는 분명한 왕의 모습이다. 이는 김유신이 죽은 지 160년 만에 흥무대왕에 추존됐기 때문이다. 또한 김유신은 산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강릉의 가장 큰 행사인 ‘단오제’는 대관령 산신께 제사를 드리는데, 이 산신이 바로 김유신인 것. 김유신은 어떻게 대관령 산신이 된 것일까? 전국에 걸쳐 십여 개에 이르는 사당, 과연 김유신의 어떤 점이 후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신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김유신 부모의 결혼 김유신은 원래 신라인이 아니라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족이었다. 김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었던 김유신의 증조부가 신라에 투항하고, 김유신 가문은 진골귀족으로 편입되었지만, 배타적인 신라 골품제 사회에서 배척받았다. 여기에서 김유신 가문의 비애는 시작된다.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은 무관으로 활약해 높은 벼슬에 오르지만, 중앙에 진출하지 못하고 변방으로만 떠돌았다. 또한 김유신의 아버지는 왕족인 여자를 사랑했지만, 당시 신라에서는 ‘금지된 사랑’이었다. 결국 김유신의 부모는 변방인 충북 진천으로 도망가 살았고 김유신은 경주가 아닌 최전방 ‘진천’에서 태어났다. 출세를 위해 사랑을 버리다 김유신에 관한 유명한 일화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김유신이 술에 취해 말을 타고 귀가하는 데 말이 행한 곳은 사랑하는 여인 천관녀의 집이었다. 이에 유신은 말의 목을 단칼에 베고 돌아섰다” 김유신의 어머니는 천관녀의 신분 때문에 둘의 사이를 반대했다. 결국 김유신은 천관녀를 버렸고 지금은 천관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천관사터만이 남아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천관녀는 기녀였을까? 김유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을 단호하게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유신, 죽기 전까지 야전사령관으로 맹활약 김유신은 18살에 화랑의 최고 자리인 ‘국선’에까지 오른다. 그리고 ‘낭비성 전투’라는 첫 역사적 무대에서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 전투에서 김유신은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온다. 이후 김유신은 패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79세, 죽기 전까지 야전 사령관으로 전장에 나섰던 김유신. 심리전의 명장이기도 했던 김유신의 전술과 통일의 주역이 된 신라군의 뛰어난 무기와 군사력의 실체를 탐색해 본다. 최후의 승자, 김유신과 김춘추 삼국 중 가장 약했던 나라 신라는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고 최후의 승자로 남은 것일까? 진골귀족으로부터 배척당하는 비슷한 처지였던 김유신과 김춘추. 신라 중앙에서 소수파 개혁세력이었던 이들은 어떻게 보수 진골귀족을 누르고 신라를 삼국 통일전쟁의 궁극적 승자로 만들 수 있었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7세기에 최후의 승자가 된 이들의 역사를 쫓아가 본다. HD역사스페셜 25회 – 김유신이 왕이 된 까닭은 (2005.10.28.방송) http://histor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