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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년 확정금리가 무려 20%! 한국이 IMF 구제금융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KBS 20131019 방송) 1 год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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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년 확정금리가 무려 20%! 한국이 IMF 구제금융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KBS 20131019 방송)

■ 대한민국의 IMF구제 금융 신청 발표 97년 1월 한보를 시작으로 대마불사,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졌다. 삼미,진로,기아 줄지어 대기업들이 쓰러졌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환율이 급등했다. 고정환율제였던 한국은 국고의 달러를 환율방어를 위해 풀었다. 달러를 사자는 사람은 많았지만, 팔자는 사람은 없었다. 외환시장이 멈췄다. 12월3일. 한국은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 공짜는 없었다. IMF의 지원금 000 달러는 IMF가 내건 조건을 한국이 실천하는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원될 예정이었다. 세계 시장은 한국이 가혹한 IMF의 조건을 이겨내리라 생각지 않았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원달러 환율은 2000원을 넘어서고 있었다.국가 부도가 코앞에 닥쳐왔다. ■ 국민이 나서다 - 금모으기 운동 국가 부도 위기에 맞서 한국의 국민들이 나섰다. 아나바다, 자동차 놓고 다니기 등 절약운동을 넘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빠른 시간에 달러로 바꿀 수 있는 물건, 금에 주목했다. 검찰청, 새마을 부녀회, 귀금속 협회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기획된 이벤트를 보도하던 KBS는 전국민 캠페인을 시작한다. 첫날부터 장롱에서 꺼낸 금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은행앞에 장사진을 쳤다. 349만명이 돌반지에서 가보까지 들고 나왔다. 그렇게 모아진 금이 225톤, 21억 7천만달러를 수출했다. 벌어들인 건 외화만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리고 세계 시장은, 그 어떤 IMF 지원국에서도 볼 수 없던 한국민들의 모습에서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보았다. ■ 정부가 나서서 세계를 설득하다 -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 97년 1월 87%에 이르던 외채 만기 연장률이 97년 12월에는 5.1%로 떨어졌다.IMF에서 초기 10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고스란히 외국 은행에 진 빚을 갚는데 들어가버렸다. 당시 한국 경제의 가장 급한 불은 만기가 돌아온 외채였다. 신용이 바닥에 떨어진 시중은행을 대신해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 외국의 채권은행들과 협상을 벌인다. 금모으기로 보여진 한국민의 의지와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조, 기업이 고통분담을 합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국 정부는 채권은행을 설득했다. 98년 3월. 마침내 한국의 외채 만기 연장율이 98%를 넘긴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 기업들의 노력 - 구조조정에서 벤처 창업까지 대기업들은 400%가 넘는 부채비율을 1년안에 200%로 줄여야 했다. 핵심 사업만 남기고, 중복되는 사업은 빅들을 통해 정리했다. 이자 부담에 직원들의 월급도 못 주던 중소기업들도 수출 호조와 재무구조 개선에 힘입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무너진 중소기업들의 자리를 기술력을 가진 벤처로, 청년 실업대신 벤처 창업 붐이 일었다. 거품 논란이 일었던 벤처는 이후, IT한국 기술력의 토대가 된다. ■ 다시 일어서는 국민들 구조조정의 한파는 매서웠다. 기업 부도로 실업이 급증하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넥타이 맨 노숙자가 넘쳐났다. 복지 제도는 미흡했지만, 완전고용에 가까운 3%의 실업률과 실패 했을 때, 가족이 도와주면서 사회복지를 대신하던 가족안전망이 완전히 무너졌다. 정부는 사회 복지를 대폭 확대해 무너진 가족 안전망을 대신할 사회안전망을 만든다. 개인들은 좌절을 딛고, 재기의 안간힘을 쓴다. 98년 한국의 무역수지는 최대 흑자를 기록한다. ■ IMF 부채 조기 상환! 우리가 얻은 것 무역 수지 흑자와 외환시장의 안정으로 국고에 외화가 쌓인다. 마침내, 2001년 8월23일.한국은 IMF로부터 빌린 모든 빚을 갚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조기상환이었다. IMF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룬 한국 경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기업의 회계 구조가 투명해졌고, 은행은 리스크 관리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규모에서 지식기반 산업으로 , 취업 이후에도 끊임없는 자기 개발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직장인들의 각성은 한국의 기술 수준을 더욱 높였다. 전세계를 강타한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는 굳건했다. 한국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다. IMF 를 위기가 아닌 또다른 기회로 만든 것은 한국민의 저력이었다. ※ 이 영상은 2013년 10월 19일 방영된 [다큐극장 - 하나되어 이룬 기적, IMF국난 극복기] 입니다. #IMF #이자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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